원문 _ "직업이 무려 6개!"…진짜 본업이 뭔지 헷갈리는 프로N잡러 [인터뷰] - 매일경제 (mk.co.kr)
"직업이 무려 6개!"…진짜 본업이 뭔지 헷갈리는 프로N잡러 [인터뷰]
- 박나은 기자
- 입력 :
- 2022-03-18 17:09:36
- 수정 :
- 2022-03-18 22:30:16
[Weekend Interview] 진짜 본업이 뭔지 헷갈리는 프로 N잡러 박재민 "선수가 회전할 때 '등, 배, 등, 배'가 보인다면 총 두 바퀴를 돈 셈입니다. 720도를 돌았다고 해서 '세븐'이라고 불리는 기술이죠." 이해가 쏙쏙 되는 해설, 선수들에 관한 자세한 정보, 재치 있는 입담에 스노보드 경기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박재민 씨가 지난 베이징동계올림픽 때 스노보드 해설위원으로 호평을 받은 이유다. 스노보드 선수였던 그는 선수 시절 경험과 국제 심판으로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베이징에서도 알차고 재밌는 해설로 주목받았다. 스노보드가 한국인에게 낯선 종목임에도 그의 해설을 들으러 중계를 챙겨본다는 이들이 생겼고, 그의 중계 영상은 온라인상에서도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당시에는 중계 때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연일 그의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박씨는 스노보드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주꾼이다. 여러 방송과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자 브레이킹(비보잉), 스키 국내·국제 대회 심판이자 지도자, 농구협회 심판, 무용예술학부 겸임교수다. 그래서 그에게는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의 'N잡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여러 일을 하는 것이 MZ세대에게는 익숙한 문화다. 기성세대와 달리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퇴근 후 부업을 하거나 이직을 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씨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기란 쉽지 않다. 진정한 N잡러로 사는 삶은 어떠한지 매일경제가 최근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N잡러'로 불리는데, 직업을 여러 개 갖게 된 계기가 있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진 않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다. 그래서 성악도 배웠고, 비보잉도 하고, 농구와 스노보드 선수로도 활동했다.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배웠고, 하면서 재미를 느끼면 그 일에 푹 빠졌다. 취미를 계속 하다 보니 직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어떤 일들에 흥미를 느꼈나.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분야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학생 때 브레이킹을 우연히 처음 접했는데, 특이해 보이고 싶어서 비보잉을 배웠다. 이후 부상을 당해 접긴 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비보이로 활동했다. 대학 시절에는 대학 농구 인기가 뜨거웠을 때라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농구를 했다. 스노보드도 처음 시작했을 당시인 1990년대 중후반에는 지금보다 더 알려져 있지 않던 종목이었다. 흥미를 느껴 선수까지 됐다. 연기도 마찬가지로 남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틈새 시장을 공략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왔다고 볼 수 있겠다.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전혀 아니다.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슬로 스타터'이자 노력파다. 내가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면 20대 때 이미 조명을 받았을 거다. 하지만 나는 30대 후반이 돼서야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조금씩 인정받았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숙련되는 데 오래 걸려서라고 생각한다. 사실 승부욕이 아예 없어서 인정받지 못해도 개의치 않았던 것도 한몫했다. 과거 '출발드림팀'에 출연했을 당시에도 다른 출연자에게 밀려 만년 2등이었지만 괜찮았다. 하지만 되돌아봤을 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아 괴로워하는 편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이 어렵진 않았나. ▷매 순간이 어려움으로 가득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무언가를 빠르게 배우는 스타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으로 배운 것들이 아니고, 중간에 성인이 돼서 그 영역에 진입하다 보니 기존에 있는 사람들보다 수준은 낮은데 나이는 더 많은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 그 영역에 있던 사람들에게 나는 낯선 사람이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스노보드 선수 생활을 대학생 때 시작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했던 사람들끼리는 이미 알고 지내다 보니 혼자 헤쳐 나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지금은 다들 인정해주지만 처음부터 인정을 받진 못했다.
―흔치 않은 라이프스타일이다. 주변인들 반응은 어땠는지. ▷주변에서 응원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나 같은 라이프스타일이 보통 사람의 삶과 거리가 있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심지어 어떤 선배들은 내게 걱정되는 마음에 조언으로 한 말이겠지만 "너 그렇게 살다가는 제대로 된 직업 하나 없이 실패할 거다" "하고 싶은 일들만 해서 어떻게 살아가냐"라고까지 한 적이 있다. 아무래도 불안정한 삶이다 보니 주변인들이 격려보다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렇게 살 수 있는 삶의 원동력이 무엇인가. ▷이런 내 삶이 즐겁고 재밌다. 지금 하는 모든 일은 앞서 말했듯 취미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어느 하나 재미없는 일이 없고, 일하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 나는 직업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평소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나. ▷업무적인 것 외에는 사람을 자주 안 만난다. MBTI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INFP다. 남들은 내게 외향적인 'E' 성향이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라 에너지를 얻는 원천이 내 안에 있다. 그래서 바깥 생활을 잘 안 하고 집에서 혼자 공부하다 보니 여러 일을 하면서도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다. 지금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서 수업까지 듣느라 잠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평소에는 충분히 자는 편이다.
―안정된 직업이 아니다 보니 소득이 불균형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상호 보완이 된다. 방송 활동에는 일의 부침이 분명히 있다. 오름이 있으면 내림도 있다. 이때 직업이 여러 개면 하나의 직업에서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때 다른 직업에서 일이 들어와 소득이 균일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 대신 주기가 굉장히 짧다는 느낌이 있어 1년이 사계절이 아닌 12계절 같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퇴사와 이직이 잦다. 프로 N잡러로서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N잡러가 되려면 단순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파고들면서 할 수 있는 기질이 필요한 듯하다. 아까 말했듯 MBTI가 'I'로 시작하는 내향형이라 혼자 어떤 일에 대해 파고들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이런 성격적인 부분이 있다 보니 취미를 직업적인 영역으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반 회사원은 현실적인 벽이 커 경우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명확한 원칙 몇 가지는 이야기해줄 수 있다. 퇴사나 이직이 도피가 되면 안 된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는다면 과감히 하던 일을 던지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반대한다. 직업이라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내 삶이 가고자 하는 종착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고민 뒤에 선택을 한다면 겁먹지 말고 도전해보기를 추천한다.
―스노보드 해설로 주목받았지만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비판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해설의 역할은 시청자에게 전문성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종목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중에 미적분을 할 줄 아는 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모두 덧셈 뺄셈은 할 줄 안다. 미적분을 덧셈 뺄셈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 그것이 해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스노보드는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매우 낯선 종목이라 더 쉽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번 어떻게 쉬운 단어로 바꿔서 설명할까 고민하고, 출전한 선수들의 개인적인 스토리를 공부해갔다. 논란이 됐던 '등배등배' 바퀴 수 셈법은 일반 시청자가 180도를 돌았는지, 360도를 돌았는지 구분하기 힘들어 이걸 숫자로 말하는 것보다 직관적으로 보이는 '등'과 '배'로 설명하면 이해하기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회전수만 제대로 세면 되는 것인데, 시청자가 그 종목을 더 즐길 수 있도록 도왔다면 해설의 역할을 다했다고 본다.
―브레이킹이 파리올림픽 때부터 종목이 되는데. ▷국제 대회 심판 자격증이 있지만 올림픽 심판을 하진 않을 것 같다. 올림픽 심판을 하려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해 지금 하고 있는 많은 일을 희생해야 한다. 다만 국내 브레이킹 주관 단체 이사라 대표팀을 선발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좋은 대표팀 선수들을 선발해서 선수들이 메달을 딸 수 있게끔 지도하는 게 현재 목표다. 아마 그때도 브레이킹 종목 해설위원으로 찾아뵙지 않을까 싶다.
―심판은 어떻게 되는 건가.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필기 시험을 치르고 실기 시험을 봐야 한다. 스노보드는 필기 시험을 거친 뒤 실기 테스트를 해서 국내 3급, 2급, 1급 순으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야 다음 단계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농구는 몇 달 동안 매주 실기 연수를 받고 난 다음 이론 시험을 보고 실기 테스트에 통과하면 자격증이 나온다. 다만 시험이 어려워서 보통 1년에 몇 명 통과하지 못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또 있다면. ▷지금 당장은 없지만 또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무언가 시작할 때 목표를 갖고 도전하는 편이 아니라 흘러가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요새 캠핑이나 트레킹을 굉장히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가는데 처음부터 좋아하진 않았다. 우연히 어떤 방송에 나와 극한의 환경에서 트레킹과 캠핑을 했는데, 처음엔 너무 무서웠지만 실제로 해보니 너무 재밌었다. '아 이거다'는 생각이 들어 방송 이후부터 즐기고 있다. 또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 삶의 목표였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코로나19로 인한 힘든 시기를 지나 행복을 되찾고 새로운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
▶▶ 박재민은… △1983년생 △서울대 체육교육과 졸업 △2018 평창동계올림픽·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스노보드 해설위원 △대한농구협회 공인 심판 △비보잉 국제·국내 대회 심판 △'출발드림팀' 등 방송 출연 배우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무용예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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