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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전문체육] 엄마, 4년마다 어디가? | 조선일보2023-08-11 11:21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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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4년마다 어디가?

[베이징 동계올림픽] 초등생 딸 둔 41세 이채원, 6번째 올림픽 도전

“어휴, 처음이에요. 이런 곳은.”

이채원(41·평창군청)은 3일 전화 통화를 시작하면서 한숨부터 쉬었다. “눈은 딱딱하고, 바람은 너무 많이 불고, 춥고, 코스도 평지가 거의 없어서 쉴 수도 없고…. 나름 26년 동안 여기저기 대회 많이 다녔는데 여기가 가장 힘드네요.”

이채원은 한국 여자 크로스컨트리의 개척자다. 나이 마흔을 넘긴 지금도 국내 최강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 티켓을 따면서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이뤘다. 사진은 이채원이 2017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 출전해 달리는 모습. /오종찬 기자
이채원은 한국 여자 크로스컨트리의 개척자다. 나이 마흔을 넘긴 지금도 국내 최강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 티켓을 따면서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이뤘다. 사진은 이채원이 2017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 출전해 달리는 모습. /오종찬 기자

베이징 동계올림픽 설상(雪上) 경기장은 100% 인공 눈으로 만들어졌다. 자연설이 적기 때문이다. 코스는 빙판 같다. 2018 평창 대회 여자 스노보드 금메달리스트 제이미 앤더슨(32·미국)은 “방탄 얼음 같아 보드를 타는 것 자체가 무섭다”고 말했다. 또 크로스컨트리가 열리는 장자커우 경기장은 해발 1700m에 자리 잡고 있다. 해발 700m 정도인 평창에서 훈련하던 이채원은 “산소가 부족해 숨이 턱턱 막힌다”고 했다. 감기로 목이 부어 기침이 나오고, 코까지 얼얼한 상태다. 독감 주사를 두번 맞았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한다.

이채원은 평창 올림픽을 끝으로 태극문양을 반납하고 실업팀에서 현역 생활만 이어가고 있었는데, 작년 말 대표 선발전에 나가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았다. “남편이 고민하던 제게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라며 적극적으로 밀어줬어요.” 결국 스무 살 가까이 어린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발전 1위를 했다. 2002 솔트레이크 대회부터 6회 연속 올림픽 출전. 이규혁(빙상) 등 4명과 함께 한국 역대 동·하계 올림픽 최다 출전 공동 1위가 됐다. “올림픽에 나갈 줄 몰랐는데, 출전 자체가 설레는 일이죠.” 힘겨운 여건과 싸우고 있지만, 이채원의 목소리는 들떠 보였다.

초등학교 4학년으로 올라가는 딸 이야기를 할 때는 아이를 두고 먼 곳으로 떠나야 했던 엄마의 안쓰러움이 묻어났다. “베이징에 간다고 하니까 아이가 ‘평창이 끝이라더니 왜 또 가느냐’라고 툴툴대더라고요.” 이런 딸이 지난달 한국 선수단 결단식에선 엄마에게 ‘깜짝 선물’을 보냈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투정 부렸지만, 사실은 힘차게 운동하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음성 편지였다. “대회 때문에 제가 집을 많이 비워서 딸이 일찍 철든 편이에요. 고맙고 미안하죠. 여기 오기 전날 아이가 ‘안 울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대한스키협회가 밉다’고 하더라고요. 딸한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성적으로 돌아가야죠.”

크로스컨트리는 스키를 타고 설원을 달리는 종목이다. ‘동계 올림픽의 마라톤’이라고 불리는 만큼 강한 체력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41세 여자 선수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그냥 일상에서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단백질 위주로 먹고요. 틈 날 때마다 맨몸 운동을 해서 체력을 단련할 뿐이에요.”

이채원은 스프린트 프리 10㎞, 클래식 10㎞, 스키애슬론 15㎞ 등 세 종목에 도전한다.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은 5일 열리는 스키애슬론이다. 메달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본인의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인 33위(2014년 소치)를 앞서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경기를 앞둔 이채원은 많은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용기 잃지 않게 응원해 준 가족, 평창군청 식구 등등 모든 분들이 고마워요.” 통화를 마친 뒤엔 ‘대표팀 감독, 코치님도 매일 선수들을 위해 애쓰고 계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도 보냈다. 이채원은 주변의 도움 덕분에 불혹을 넘긴 지금까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철녀(鐵女)의 레이스는 그래서 외롭지 않다.


원문 _ 엄마, 4년마다 어디가? (chosun.com)